승마장에서 멋지게 고개를 숙이고 등 근육을 아치형으로 둥글게 말며 달리는 말을 보면 누구나 감탄하곤 합니다. 많은 기승자가 이 '굴요(Flexion)'를 완성하기 위해 고삐를 강하게 잡아당기거나 물리적인 힘을 가하곤 하지만, 진정한 굴요는 손 끝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은 말의 신체 구조를 이해하고, 강제가 아닌 '자발적 순종'을 통해 완성되는 굴요의 과학적 원리를 파헤쳐 보겠습니다.
- 굴요(Flexion)의 진정한 의미
흔히 굴요를 단순히 '말이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오해하지만, 영양학적으로나 생체 역학적으로 굴요는 훨씬 복잡한 개념입니다.
후구로부터의 추진: 굴요의 시작은 머리가 아니라 뒷다리(후구)입니다. 뒷다리가 몸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오며 추진력을 만들고, 그 에너지가 말의 등을 타고 목을 지나 기승자의 손으로 전달되어야 합니다.
에너지의 순환: 기승자의 손은 말의 에너지를 막는 벽이 아니라, 뒤에서 온 에너지를 다시 말의 입으로 부드럽게 되돌려주는 통로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때 말은 스스로 뒷덜미(Poll)를 굴절시키며 가장 편안한 자세인 굴요를 완성합니다.
- 왜 강제적인 굴요는 위험한가?
고삐를 억지로 당겨 코끝이 가슴 쪽으로 과하게 당겨진 상태(롤커, Rollkur)는 진정한 굴요가 아닙니다.
호흡 및 시야 방해: 강제적인 굴요는 말의 기도 관절을 압박하여 호흡을 방해하고 시야를 좁힙니다. 이는 말에게 극심한 공포와 스트레스를 줍니다.
등 근육의 경직: 머리만 억지로 숙인 말은 등이 아래로 꺼지게 됩니다. 이는 기승자의 무게를 분산시키지 못해 말의 척추에 영구적인 손상을 입힐 수 있습니다.
- [리얼 후기] "고삐를 놓아주었을 때, 비로소 고개를 숙였습니다"
저 역시 한때는 '멋진 자세'를 만들고 싶은 욕심에 고삐를 짧게 잡고 말의 입을 압박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돌보는 회색말은 자존심이 강한 편입니다. 제가 힘으로 고개를 숙이려 할수록 우리 말은 고개를 더 높이 쳐들거나 입을 벌리며 저항했죠. 30분 내내 힘겨루기를 하고 나면 제 팔은 저리고 말은 땀 범벅이 되기 일쑤였습니다.
어느 날 교관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손을 비우고 다리로 말을 밀어라.' 반신반의하며 고삐를 느슨하게 해주고 종아리로 추진력을 더했습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말의 뒷다리가 힘차게 들어오기 시작했고, 제가 고삐를 살짝 당기는 듯 마는 듯한 느낌만 주었음에도 말 스스로 목 근육을 부드럽게 이완하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억지로 누르는 것이 아니라, 말이 스스로 가장 균형 잡힌 자세를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 기승자의 역할임을 깨달은 순간이었습니다. 부산에서 멀리 여수까지 저를 믿고 따라와 준 우리 말과의 신뢰가 이 '가벼운 고삐' 하나로 증명된 것 같아 뭉클했던 기억이 납니다."
- 올바른 굴요를 이끌어내는 3단계 부조
추진(Impulsion): 종아리를 이용해 말이 뒷다리를 깊게 딛도록 유도합니다. 에너지가 뒤에서 앞으로 흐르게 만드는 것이 1단계입니다.
수용(Receiving): 말의 입에서 전해오는 리듬을 손으로 부드럽게 받습니다. 고정된 손이 아니라 말의 입 움직임에 따라 미세하게 움직여주는 손이 필요합니다.
반 절반(Half-halt): 고삐를 아주 잠깐 가볍게 쥐었다 펴면서 말에게 균형을 다시 잡으라는 신호를 줍니다. 이때 말은 기승자의 손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몸을 세우며 굴요하게 됩니다.
- 마치며: 굴요는 말과 기승자의 '대화'입니다
굴요는 외형적인 화려함을 위한 도구가 아닙니다. 말이 기승자의 무게를 가장 안전하게 지탱하고, 기승자의 미세한 신호에도 즉각 반응할 수 있는 '준비된 상태'를 만드는 과정입니다. 강제적인 힘을 빼고 말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세요. 소통이 완성되는 순간, 굴요는 선물처럼 찾아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