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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승술 철학] 말의 고개를 숙이게 하는 '굴요'는 강제성이 아닌 소통의 결과다

by acre7788 2026. 5. 14.

승마장에서 멋지게 고개를 숙이고 등 근육을 아치형으로 둥글게 말며 달리는 말을 보면 누구나 감탄하곤 합니다. 많은 기승자가 이 '굴요(Flexion)'를 완성하기 위해 고삐를 강하게 잡아당기거나 물리적인 힘을 가하곤 하지만, 진정한 굴요는 손 끝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은 말의 신체 구조를 이해하고, 강제가 아닌 '자발적 순종'을 통해 완성되는 굴요의 과학적 원리를 파헤쳐 보겠습니다.

  1. 굴요(Flexion)의 진정한 의미
    흔히 굴요를 단순히 '말이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오해하지만, 영양학적으로나 생체 역학적으로 굴요는 훨씬 복잡한 개념입니다.

후구로부터의 추진: 굴요의 시작은 머리가 아니라 뒷다리(후구)입니다. 뒷다리가 몸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오며 추진력을 만들고, 그 에너지가 말의 등을 타고 목을 지나 기승자의 손으로 전달되어야 합니다.

에너지의 순환: 기승자의 손은 말의 에너지를 막는 벽이 아니라, 뒤에서 온 에너지를 다시 말의 입으로 부드럽게 되돌려주는 통로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때 말은 스스로 뒷덜미(Poll)를 굴절시키며 가장 편안한 자세인 굴요를 완성합니다.

  1. 왜 강제적인 굴요는 위험한가?
    고삐를 억지로 당겨 코끝이 가슴 쪽으로 과하게 당겨진 상태(롤커, Rollkur)는 진정한 굴요가 아닙니다.

호흡 및 시야 방해: 강제적인 굴요는 말의 기도 관절을 압박하여 호흡을 방해하고 시야를 좁힙니다. 이는 말에게 극심한 공포와 스트레스를 줍니다.

등 근육의 경직: 머리만 억지로 숙인 말은 등이 아래로 꺼지게 됩니다. 이는 기승자의 무게를 분산시키지 못해 말의 척추에 영구적인 손상을 입힐 수 있습니다.

  1. [리얼 후기] "고삐를 놓아주었을 때, 비로소 고개를 숙였습니다"
    저 역시 한때는 '멋진 자세'를 만들고 싶은 욕심에 고삐를 짧게 잡고 말의 입을 압박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돌보는 회색말은 자존심이 강한 편입니다. 제가 힘으로 고개를 숙이려 할수록 우리 말은 고개를 더 높이 쳐들거나 입을 벌리며 저항했죠. 30분 내내 힘겨루기를 하고 나면 제 팔은 저리고 말은 땀 범벅이 되기 일쑤였습니다.

어느 날 교관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손을 비우고 다리로 말을 밀어라.' 반신반의하며 고삐를 느슨하게 해주고 종아리로 추진력을 더했습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말의 뒷다리가 힘차게 들어오기 시작했고, 제가 고삐를 살짝 당기는 듯 마는 듯한 느낌만 주었음에도 말 스스로 목 근육을 부드럽게 이완하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억지로 누르는 것이 아니라, 말이 스스로 가장 균형 잡힌 자세를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 기승자의 역할임을 깨달은 순간이었습니다. 부산에서 멀리 여수까지 저를 믿고 따라와 준 우리 말과의 신뢰가 이 '가벼운 고삐' 하나로 증명된 것 같아 뭉클했던 기억이 납니다."

  1. 올바른 굴요를 이끌어내는 3단계 부조
    추진(Impulsion): 종아리를 이용해 말이 뒷다리를 깊게 딛도록 유도합니다. 에너지가 뒤에서 앞으로 흐르게 만드는 것이 1단계입니다.

수용(Receiving): 말의 입에서 전해오는 리듬을 손으로 부드럽게 받습니다. 고정된 손이 아니라 말의 입 움직임에 따라 미세하게 움직여주는 손이 필요합니다.

반 절반(Half-halt): 고삐를 아주 잠깐 가볍게 쥐었다 펴면서 말에게 균형을 다시 잡으라는 신호를 줍니다. 이때 말은 기승자의 손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몸을 세우며 굴요하게 됩니다.

  1. 마치며: 굴요는 말과 기승자의 '대화'입니다
    굴요는 외형적인 화려함을 위한 도구가 아닙니다. 말이 기승자의 무게를 가장 안전하게 지탱하고, 기승자의 미세한 신호에도 즉각 반응할 수 있는 '준비된 상태'를 만드는 과정입니다. 강제적인 힘을 빼고 말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세요. 소통이 완성되는 순간, 굴요는 선물처럼 찾아옵니다.